주택난 때마다 소환된 용산공원… 40년 가까운 논쟁 끝날까
· 국회는 26일 캠프킴 등 산재부지 개발 기준을 완화하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한다
· 개정안에 본체부지를 주택용지로 전환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 용산기지 활용 논쟁은 1987년 대선 공약으로 시작된 40년 가까운 사안이다
· 2007년 특별법은 본체부지 전체의 공원 조성을 원칙으로 하고 용도변경·매각을 금지했다
· 정부는 장교숙소·군인아파트·옛 방위사업청 부지 등 녹지 기능을 잃은 땅만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 서울시는 해당 부지도 본체부지라며 반대하고 산재부지·국유지 고밀 개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0일 용산공원 주택 공급을 논의했지만 본체부지 활용을 놓고 입장 차만 확인했고, 국회는 26일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캠프킴 등 공원 주변 산재부지의 공원·녹지 확보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본체부지를 주택용지로 바꾸는 조항은 담기지 않았다. 용산 미군기지 터의 활용을 둘러싼 논쟁은 1987년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기지 이전을 공약하면서 시작된 40년 가까운 사안이다.
2003년 한미 정상이 기지 이전에 합의하면서 논의가 재개됐고 정부와 서울시는 공원화 방향에는 동의했으나 도시계획 권한과 본체부지 전면 보전 여부를 놓고 충돌했다. 2007년 제정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본체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도록 원칙을 세우고 공원 외 목적의 용도변경·매각을 금지했으며, 캠프킴 등 산재부지만 복합시설조성지구로 개발할 수 있게 했다. 이번에 정부는 공원 전체가 아니라 장교숙소와 군인아파트, 옛 방위사업청 부지처럼 이미 건물이 들어서 녹지 기능을 잃은 땅만 청년·신혼부부 주택에 쓰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이들 부지도 특별법상 공원으로 조성해야 할 본체부지에 포함된다며 반대하고, 대신 캠프킴 등 산재부지와 인근 국유지를 고밀 개발해 공급량을 늘리자고 제안했다. 본체부지 일부에 주택을 지으려면 별도의 법 개정과 공론화가 필요해, 이번 협상의 쟁점은 주변 부지 공급량 확대와 본체부지 일부 활용 가운데 어디까지 열어둘지로 좁혀진다. 익명을 요구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용산공원을 단기 공급 수단으로만 봐서는 안 되며 공급 효과와 도심 녹지의 가치, 역사성, 도시 경쟁력을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
8·13 대책 이후에도 서울 집값과 전월세 불안이 이어지자 정부는 도심 내 단기 공급이 가능한 부지를 총동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고, 용산공원 부지가 다시 후보로 떠올랐다. 반면 서울시는 도심 대규모 녹지 보전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두 축의 충돌이 국회 법 개정 일정과 맞물려 표면화됐다.
시장에 주는 의미
용산·이촌·삼각지 일대 수요자라면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산재부지 기준 완화 내용과 캠프킴 부지 개발 계획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실질적이다. 본체부지 활용은 추가 법 개정과 공론화가 전제되어 단기간에 물량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서울시 조사에서 시민 63.9%가 용산공원 내 공공주택 공급에 반대한 만큼 정책 변수도 크다.
자주 묻는 질문
- Q. 용산공원 본체부지에 주택을 지을 수 있나요?
- 현행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2007년 제정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본체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도록 원칙을 정하고 공원 외 목적의 용도변경과 매각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본체부지 일부를 주택용지로 쓰려면 별도의 법 개정과 공론화 절차가 필요합니다.
- Q. 26일 처리 예정인 개정안에는 무엇이 담겼나요?
- 캠프킴 등 용산공원 주변 산재부지의 공원·녹지 확보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입니다. 산재부지는 2007년 특별법에서도 주거·상업·업무·문화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복합시설조성지구로 분류돼 있어 본체부지와는 규제가 다릅니다.
- Q.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 차이는 무엇인가요?
- 정부는 장교숙소, 군인아파트, 옛 방위사업청 부지처럼 이미 건물이 있어 녹지 기능을 잃은 땅에 청년·신혼부부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는 이들 부지도 특별법상 본체부지에 포함된다며 반대하고, 캠프킴 등 산재부지와 인근 국유지를 고밀 개발해 공급량을 늘리자고 제안했습니다.
- Q. 이 논쟁은 언제부터 이어져 왔나요?
- 1987년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용산기지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1990년 한미 기본합의서 체결과 1993년 사업 보류, 2003년 한미 정상 합의, 2007년 특별법 제정을 거치며 40년 가까이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반복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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